“디자인을 시작할 때는 특정 아이디어 없이 끊임없이 스케치해요. 다른 디자이너들은 특별한 생각이나 주변 사물, 여행에서 영감을 얻곤 단숨에 디자인한다는데, 저는 그냥 앉아서 무언가를 계속 그리죠. 직관적으로 일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나아가야 할 디자인의 방향이 잡히게 되죠. 정말 말도 안 되게 이상한 그림을 엄청나게 그리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려요. 디자인을 완성하는 데 꽤 느린 디자이너죠.” 잉가 상페 인터뷰중.
생마르탱 운하 근처에 자리 잡은 디자이너 잉가 상페(Inga Sempe′)의 스튜디오는 빨간 벽돌과 블루 컬러 벽들의 경쾌한 믹스가 회색빛이 만연한 파리의 겨울에 잠시나마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우리에겐 잉가 상페(Inga Sempe′)라는 이름이 조금 낯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해이(Hay), 리네 로제(Ligne Roset), 알레시(Alessi), 카펠리니(Cappellini) 등 그녀와 협업한 글로벌 가구 브랜드를 나열하려면 끝이 없으니, 디자이너로서 그간의 활약을 어림짐작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경계도 없고 자유로울 것 같아도 의외로 ‘위대한’이란 호칭을 붙일 만한 여성이 손에 꼽히는 디자인계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개성을 확고하게 드러낸 소수의 여성 디자이너 중 하나입니다. <꼬마 니콜라>로 유명한 장 자크 상페가 그의 아버지라는 혹은 부홀렉 형제 중 로낭 부홀렉이 남편이라는 수식으로 그녀를 설명하는 것은 실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브랜드와 일하든 간에 패브릭을 영리하게 사용해 유머러스 하면서도 상큼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그녀에게 가장 어울리는 계절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봄. 새 봄에 쏟아질 새로운 디자인들을 기대합니다.
– 볼륨 있고 포근한 디자인
잉가 상페의 이름이 알려진 계기는 2002년, 이탈리아 브랜드 카펠리니와 함께한 컬래버레이션이었습니다. 높이 2m의 이 대형 조명 오브제는 자연스럽게 주름이 잡힌 패브릭으로 만들었는데 그 규모가 압도적이면서도 아름다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프랑스 브랜드 무스타슈(Moustache)의 ‘증기’라는 뜻을 가진 ‘바푀르 (Vapeur)’ 램프는 물에 강하고 잘 찢어지지 않는 기능성 종이인 타이벡 소재로 만들었는데, 많은 주름으로 볼륨감을 강조해 마치 하얀 구름 같은 느낌이 납니다.
– 소박하고 매력 넘치는 소품들
잉가 상페가 디자인하는 소품은 첫눈에는 평범해 보여도 볼수록 남다르고 사용할수록 그 속에 담긴 위트가 느껴집니다. 스웨덴 브랜드 왜스트베르그(Wästberg)와 함께한 조명도 그렇습니다. 반투명한 화이트 글라스 소재가 은은한 불빛을 내는 테이블 램프 ‘W163 랑피르(Lampyre)’, 펜던트, 테이블 램프, 플로어 스탠드 등 여러 용도의 조명을 갖춘 ‘W103 상페’ 컬렉션도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플로어 스탠드인 W103F는 받침을 위로 끌어 올려 테이블로도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합니다. ‘섬’이라는 뜻의 ‘일(Ile)’ 컬렉션은 벽에 걸거나, 클립처럼 어딘가에 끼우거나, 테이블 위에 놓거나, 어떤 공간에서도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조명입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패턴이 편안함을 더하는 노르웨이 브랜드 로로스 트위드(RØros Tweed)의 블랭킷, 벽지나 작품처럼 벽 한 면에 걸어서 스타일링할 수 있는 이탈리아 브랜드 골란(Gorlan)의 ‘메테오(Meteo)’ 러그, 긴 목이 우아하게 느껴지는 알레시의 ‘콜로-알토(Collo-alto)’ 커틀러리, 액자처럼 걸어서 사용하는 헤이의 ‘루반(Ruban)’ 거울 등 매력적인 소품이 많습니다.